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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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제한구역

Written byinnot

작성일 조회 14

시작은 누구보다 쉬웠는데, 왜 돌아가는 길은 늘 이렇게 아득할까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무슨 소용이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꽤 급한 편이다. 끝을 맺는 건 어려워하면서도 시작만큼은 누구보다 빠르다. 적어도 시작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 결정이 맞았고, 내 마음이 옳았으니까. 사람을 좋아할 때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늘 그랬다. 누군가에겐 내 이런 속도가 참 쉬워 보이고, 때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마음과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숨기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숨겨지지가 않는다. 상대가 나와 같은 보폭으로 다가올 거라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나는 내 마음을 아껴두고는 도저히 살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남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일을 급하게 시작해?", "왜 그렇게 갑자기 꽂히는 거야?" 겉으로는 가벼운 충동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시작 뒤에는 나만의 수많은 경험과 촉이 있다. 찰나의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수십, 수백 번의 생각들이 쉼 없이 부딪히고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렇게 시작의 첫 페이지를 남들보다 너무 빨리 넘겨버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내달린 만큼, 내가 도달해 있는 거리도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다. 시작은 버튼 하나 누르듯 쉬웠는데, 너무 멀리 와버린 탓에 멈추거나 쉽게 접어두고 돌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완독하기가 버거운 이유도 결국 내가 너무 멀리 내달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문제는 늘 방향이 아니라 속도였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보자면, 내 방향은 늘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만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내 속도가 너무 빨라 나조차 감당하기 힘든 거리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어쩌면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나만의 '속도제한구역'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지가 아니라, 멈추고 싶을 때 돌아설 수 있을 만큼의 속도를 지키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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