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살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6~9살 정도에 계속 다녔던 것 같다.
그땐 주말마다 엄마와 건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종로에 있는 정독도서관이었다.
다양한 책을 많이 골라왔던건 기억 나는데,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과학 관련 책이 많았던 것 같긴 한데, 기억나는 제목은 없다. 독서 기록이라도 남겼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대신 건대입구역 올라가는 계단, 북촌 근처 걷던 길, 도서관에 있던 은행나무, 돌아오는 길 2호선에 늘 있던 잡상인들은 기억난다.
(잡상인들은 내가 몇가지 물건을 사달라고 했었기 때문에 기억 나는데, 그 중 하나는 커피 찌꺼기를 복주머니 처럼 넣어 파는 방향제였다. 그땐 천원이었는데 요샌 북촌 그랑핸드 같은 곳에서 이런걸 사쉐라고 이름 붙여서 만오천원에 판다.)
그때 나는 그렇게 돌아다니는게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 그 애를 데리고 다니는 어른에겐 이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감이 온다. (아직 애는 없지만)
당시 2후3초의 isfp였던 엄마에겐 말 많은 애를 데리고 다니는 게 정말 피곤한 일이었겠다 싶다.
도서관은 보통 오전에 갔다가 점심때 나와서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점심 메뉴가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는 검소한 사람이었어서 아마 분식이나 칼국수 같은걸 먹었을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면 다시 도서관에 가서 오후에 책을 보다가 저녁 즈음 집으로 돌아왔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북촌 쪽 동네는 우리 동네인 건대입구와는 좀 달랐던 거 같다.
한옥도 있고, 좁은 골목도 많고, 작은 가게들도 많았던 것 같고 은행나무가 많았다.
내가 요즘 태어난 애라면 키즈카페에서 뛰어 다녔겠지만,
그때 다녔던 정독도서관은 뛰어다닐 수도 없고 소리를 내도 안됐다.
특별히 어린이를 환영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어린이도 조용하면 그곳에 있어도 되는 곳이었다. 나는 그 공간을 좋아했던 기억은 난다.
특히 책을 빌려 나와서 야외 테이블에서 읽는 걸 좋아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 좋아했던건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 구경하며 고르는 것이었다.
30대가 된 지금도 넷플릭스 구독자로서 여전히 그러고 있긴 하다.
지금 생각하면 독서라기 보단 열람실을 산책다녔던 것 같다.
사실 엄마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때 기억에도 엄마는 책을 읽기보단 하루 종일 내가 책 읽는 걸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이렇게까진 못할 것 같다.
그때는 주말은 원래 늘 그렇게 보내는 건줄 알았다.
아직 아이가 없어도 알 것 같다.
그게 얼마나 귀찮고, 준비할 게 많고, 밥 먹이고, 화장실 보내고, 기분도 관리하고,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못하게 하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걸.
그래도 그 반복된 주말 덕분에 나는 책과 책이 있는 장소를 편하게 느끼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생때나 고등학생 때도, 20대 초중반까지도 혼자 도서관이나 서점에 정말 자주 갔다.
엄마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는 그때 읽은 책을 하나도 기억 못한다.
이 조합이 좀 웃기긴 하다.
하지만 그 덕에 엄마가 다른 집만큼 잘 못해줘서 미안하단 식으로 얘기할 때마다
나는 주말마다 날 데리고 정독도서관에 다녔지 않냐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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