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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specimen

서른, 빨간 숫자와 파란 숫자 사이에서

이름 없이 남겨진 문장을 표본지처럼 조용히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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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이다. 대학은 나왔다. 그게 내가 아직도 붙잡고 있는 유일한 문장이다. "그래도 나 대학은 나왔잖아." 술자리에서, 면접 대기실에서, 새벽 세 시의 화장실 거울 앞에서. 그 문장은 이제 자격증이 아니라 변명에 가깝다. 시작은 사소했다. 2020년 겨울, 동기 형이 회식 자리에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 속 숫자가 빨갛게 위로 뻗어 있었다. 형은 별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웃었다. 그 웃음이 문제였다. 나는 그날 밤 집에 와서 거래소 앱을 깔았다. 신분증을 찍고, 계좌를 연결하고, 오십만 원을 넣었다. 오십만 원은 내 한 달 용돈이었고, 잃어도 그만인 돈이었다. 사흘 만에 팔십만 원이 되었다.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삼십만 원이었다. 사람들은 도박 중독을 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건 시간 감각의 문제다. 코인 시장에는 장 마감이 없다. 새벽 두 시에도, 명절 아침에도,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차트는 움직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을 시계로 읽지 않고 캔들로 읽기 시작했다. 15분봉 하나가 15분이었다. 하루는 96개의 봉이었다. 나는 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96번 심장이 오르내리는 걸 견디고 있었다. 첫 취업은 했었다. 중견기업 사무직, 초봉 3천 초반.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월급날이었다. 통장에 찍힌 240만 원을 보면서 나는 안도가 아니라 모멸을 느꼈다. 한 달을 통째로 갈아 넣어서 240.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 새벽 두 시간 만에 나는 400을 벌었다. 이 계산을 한 번 해버리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 노동의 단위가 우스워진다. 회사에서 부장이 보고서 서식을 지적할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이 30분 동안, 나는 당신 월급만큼을 벌 수도 있었다. 물론 잃을 수도 있었다. 그 부분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게 절여진다는 뜻이다. 퇴사는 이유가 그럴듯했다. "전업으로 해보려고요." 나는 그게 창업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는 프리랜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그해에 회사 연봉의 두 배를 벌었다. 딱 그해에만. 이후 오 년을 한 문단으로 줄이면 이렇다. 레버리지를 배웠고, 청산을 당했고, 원금을 회복하려고 더 큰 레버리지를 썼고, 다시 청산당했다. 신용대출을 받았다.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 카드론을 썼다. 친구에게 삼백을 빌렸다. 그 친구는 지금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라도 안 받는다. 기이한 건, 잃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즐거웠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생함이었다. 청산 알림이 뜨는 순간의 그 서늘한 전율은 어떤 기쁨보다도 선명했다. 나는 파산하면서 살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차트를 끄면, 세상이 회색 무성영화가 되었다.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 이직 이야기, 전세 대출 이야기가 전부 저해상도로 들렸다. 나는 그들이 지루한 게 아니라, 내 감각이 망가진 거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지금 내 통장에는 십일만 원이 있다. 빚은 팔천 정도 된다. 정확한 액수는 모른다. 세는 걸 그만둔 지 오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빚이 아니다. 이력서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가 텅 비어 있다. 스물넷의 나와 서른의 나 사이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경력도, 기술도, 자격증도, 인간관계도. 동기들은 대리를 달았고 몇몇은 과장을 바라본다. 나는 신입 지원 자격에서도 나이로 걸러진다. 면접관이 물었다. "이 기간에 뭘 하셨나요?" 나는 "투자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의미 없는 끄덕임이었다. 부모님은 아직 모르신다. 정확히는, 아신다. 다만 서로 모르는 척하고 있다. 어머니가 반찬을 싸주시면서 "요즘도 그거 하니?"라고 물으실 때, 나는 "아뇨"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어머니의 눈에 스치는 것은 안도가 아니라 체념이다. 어머니는 내가 거짓말하는 걸 알고, 나는 어머니가 아는 걸 안다. 그 침묵이 우리 집 밥상의 온도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왜 못 끊냐고. 나는 이제 안다. 끊지 못하는 게 아니라, 끊는 순간 마주해야 하는 게 무서운 거다. 차트를 켜놓고 있는 한, 나는 아직 게임 중인 사람이다. 회복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 언젠가 한 방으로 다 돌려놓을 사람. 앱을 지우는 순간 나는 그냥 서른 살에 팔천만 원 빚지고 경력 없는 무직자가 된다. 전자는 서사가 있고 후자는 결론만 있다. 인간은 결론보다 서사를 택한다. 그게 다다. 이게 도파민에 절여진다는 말의 진짜 의미다. 뇌가 망가지는 게 아니다. 이야기가 망가진다. 나는 내 인생을 "아직 진행 중인 도박"으로 설정해 두었고, 그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더 잃는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누구에게 교훈을 줄 자격이 없다. 다만 하나만 적어두고 싶었다. 스물넷의 나에게 그 오십만 원은 잃어도 그만인 돈이었다. 정말 그랬다. 문제는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십만 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오십만 원을 통째로 날렸다면, 나는 "아 이거 위험하네" 하고 앱을 지웠을지도 모른다. 나를 망친 건 손실이 아니라 첫 수익이었다. 그러니 혹시 지금 처음으로 빨간 숫자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축하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그만두라는 말도 하지 않겠다. 어차피 내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스물넷의 나도 안 들었다. 어젯밤, 나는 설정 화면까지 들어갔다. 앱 삭제 버튼이 거기 있었다. 손가락을 올려놓고 한참을 있었다. 그러다 화면이 저절로 꺼졌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반찬 가지러 오라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으셨다. "요즘도 그거 하니?" 수화기 저편에서 어머니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밖을 봤다. 아직 해가 낮게 걸려 있었다. 오늘의 첫 봉은 이제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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